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_별헤는밤(윤동주) 모나미 에디션

2020. 5. 27. 22:26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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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같으면 퇴근을 할 시간이 되어도 붐비는 퇴근길이 싫어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다가 시간이 충분히 늦어지면 집에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늘은 서둘러서 퇴근을 하고 yes24 중고서점에 들렀다.

 내가 서점에 들렀다 하여 책을 살펴보기 위함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주말에 교보문고는 자주 갔지만 yes24 서점은 난생처음 가보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서울 퇴근시간의 인파의 압박을 떠안으면서까지 처음 가보는 그곳을 방문한 이유는 지인을 통해 '별헤는밤(윤동주)' 한정판 모나미 볼펜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이다.

별헤는 밤 모나미 한정판 에디션이다.
제품명에서 확인되다시피 '별 헤는 밤' 에디션이다.

 나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무척이나 아끼는데 그중에 외우고 사는 시는 '서시' 하나뿐이지만 시집에 담긴 다른 시들도 무척 아끼는 편이다. 물론 이따금씩 무작위적으로 시집을 펴다 보면 이런 시가 이 시집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시들도 있지만 잊었다 해서 해당 시들을 아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 '별 헤는 밤'은 나에게 특이한 느낌을 주는 시이다. 해당 시는 교과서에도 실려있었고 내가 타자 연습을 할 당시에 따라 쓰기 교본에도 들어있었고 때때로 보게 되는 광고 구절에도 들어있었으나 나에게 크게 와닿지는 못하였다. 나에게는 패, 경, 옥 이런 소녀들의 이름이 남아있지 않았고 더욱이 별 하나마다 무엇을 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해당 시가 참 서정적이면서도 자아성찰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는 명시라는 것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 시에 공감을 가지지 못하였던 것은 내가 지금 올려다보는 서울 하늘은 별빛이 거의 없고, 더욱이 나의 시력이 별빛을 헤아릴 수준이 아니기 때문일 테다. 뚱딴지같은 소리지만 난 밤하늘의 달빛을 좋아한다. 이렇게 내가 해당 시를 가슴으로 느끼지 않음에도 이 시는 많이 아끼는 시들 중에 하나이다. 그것은 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고, 윤동주가 그리는 그리움 때문이고, 윤동주의 이름 석 자를 흙으로 덮어버릴 무식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해당 모나미 한정판 볼펜 에디션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가격은 6개들이 세트에 6천 원으로 한정판 치고는 저렴한 편이다. 물론 저렴하게 나온 편이라 한정판치고는 대단히 특별한 느낌은 없다. 다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늦은 저녁 하늘, 혹은 여명이 들기 전과 같은 짙은 남색의 색감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그것을 다 차치하고서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점이 하나 있는데 시를 아끼는 사람이 제작한 느낌이 전혀 안 든다는 것이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한정판 에디션으로 내놓으면서 볼펜 순서마다 글자 한 칸씩 내려가면서 한 구절씩 프린트되어있다. 문제는 원작의 시상대로라면 별 하나에 대응되는 순서가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 순인데 이 볼펜은 '어머니, 쓸쓸함, 사랑, 추억, 동경, 시' 순서라는 것이다. 나는 시의 본래 감성을 해치는 이런 표현을 굉장히 싫어한다. 한정판이고 해당 시의 감성과 분위기와 어울려 샀지만, 굉장히 실망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디자인 제품은 한정판이라고 하여도 보통 소장용으로서는 가치가 없고 소모용으로서 사용하기에 개당 천 원의 가격은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언제부턴가 켈리그래피나 기타 등등 디자인적으로 시를 가져다 사용하는 게 유행하면서 시를 적을 때 띄어쓰기 하나, 쉼표와 온점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가며 시적 허용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않고 그저 있어 보이게 시를 사용하고 변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나는 디자이너들이 시를 이용할 때, 그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기리기 위해 해당 제품을 구매하지만, 단지 표면적인 멋을 위해 시의 전달 방식과 시상을 해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고 안타까운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소모품이 아닌 진정 소장하고 싶은 그런 제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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