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 18:13ㆍ개인 일상
최근에는 15년만에 바둑을 다시 두면서 여러 바둑 대회의 결과 등을 확인하고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가볍게 확인하게 되었는데, 역시 이만큼 재밌는 스포츠도 많지 않다. 과거에는 바둑을 스포츠라 하지도 않았고 바둑 기사들을 선수들이라 부르는걸 실례로 여겼지만 e스포츠도 스포츠라 인정받는 시대가 되면서 바둑도 엄연히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바둑 기사들을 선수라 부르는것 역시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얉게 가지고 있는 여러 잡다한 지식들 중에 바둑에 대한것도 포함된다. 오청원, 조훈현, 이창호를 이어가는 현대 바둑계의 역사는 바둑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고, 단지 내 글을 보기 위한 지식으로는 불필요한 내용이다. 글의 주제와 크게 관련이 없지만 바둑에 대해 관심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 위대한 유산이 잘 계승될 수 있길 바라며 이창호 시대부터의 바둑사는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겠다.
20~15년 전 쯤에만 하여도 이창호가 세계 바둑계의 1인자로 군림하던 시절에 살면서 바둑을 조금 배워 주변에 바둑을 둘 줄 아는 친구들과 취미삼아 이따금씩 두고는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몇십년은 더 갈줄 알았던 이창호의 시대는 저물고 이세돌이 바둑계의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시작한 시점부터 흥미를 잃기 시작하였다. 돌부처라는 별명을 가졌던 이창호에 비해 이세돌의 당시 모습은 진중한 멋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압도적인 형세판단 능력과 끝내기 그리고 예상하기 어려운 포석 능력을 지닌 이창호와 달리 월등한 수계산으로 중반 싸움을 즐기는 이세돌의 바둑은 그 스타일 만큼 변수가 많아 내가 즐기기는 다소 부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창호 시절과는 달리 세계기전에서의 타이틀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단적으로 이세돌이 중국의 구리 보다 실력이 앞선다는걸 인정하지 못하는 팬들도 많았고 오히려 그런 논란 덕에 이세돌-구리 10번기 같은 이벤트가 열릴 수도 있었겠다.
그리고 이세돌의 시대가 지나 중국의 커제가 1인자로 올라섰고 한국의 박정환이 잠시나마 랭킹 1위를 가져온 적이 있으나 한국인 팬들조차 박정환을 커제보다 강하다 평가하지 않는다. 실제로 팬들은 커제의 승률이 떨어졌던 이유를 대학활동과 연예계 활동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를 방증하듯 코로나로 인해 대외 활동을 하지 않은 올해의 커제는 승률이 90%가 넘는 괴물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둑에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세계 랭킹 1위 바둑기사는 다시 한국인 기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신진서가 바로 해당 기사인데 바둑을 다시 두지 않았다면 나도 현재의 1위는 중국의 커제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신진서의 경우 올해 환골탈태의 수준으로 실력이 월등하게 올랐으며 그 역시 올해의 승률이 현재까지 92% 가까이 된다. 그것도 올해 커제의 2배가 조금 안되는 경기를 치르면서 유지하고 있다. 그 신진서와 커제가 올해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스 결승에서 11월 2일부터 붙으니 신진서가 꼭 이겨서 한국의 바둑계가 부흥할 씨앗이 되었으면 한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최근에 타이젬에서 아마2단을 하는 친구와 자주 바둑을 두면서 잊고 살던 바둑의 수들을 다시 익히고 새롭게 배우면서 이에대해 많은 공감을 하고 있다. 바둑의 초반 수들은 흔히 말하는 정석에 따라 진행되지만 사실 이것을 따르지 않고 적당한 시점에 손을 떼고 혹은 정석이 시작되기 이전에 전혀 다른곳으로 옮겨서 착점하기도 한다. 초반에는 비어있는 공간이 많은 만큼 한수 한수가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만들 수 있고 자신이 취하는 곳이 있다면 포기하는 곳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초반에 두어진 돌들을 가지고 어떻게 그림을 그려나갈 것인지 그 다음 포석에 의해 앞서 두었던 돌들이 충분한 가치를 가지기도 하고 불필요한 수가 되기도 한다.
바둑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정석은 항상 바뀌어 왔으며 현대에 와서는 AI가 도입되면서 특정 정석이 정착되는 듯하나 정상급의 프로기사들도 자신이 준비한 그림을 위해 다소 다른 수를 두기도 한다. 내 인생을 되짚어 보면 정석을 따른 부분도 있고 정석이 아닌 길을 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석과 같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젠 초반 포석을 어느정도 두고 있는 때이니 내가 놓아둔 수들에 세상이 어떻게 반응할지 여러 수들을 보고 있자니 이 자체로 인생의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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