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나의 자화상

2020. 8. 16. 16:44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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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던 그 때가 왔는지 보려고

산모퉁이를 돌아 버려진 우물을 찾아 안을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그 시절 처럼 달이 밝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이젠 여름이 왔습니다.

오늘 우물 속 비친 사내 모습을 보면

기쁨이 있어야 할텐데

오늘도 그 사나이가 미워져 생각이 멈춥니다.

 

전에 여기 있던 사나이는 미워도 그립고

가을 속 추억처럼 남아있었는데 

 

어쩐지 이제는 그리움도 없이 미워져 돌아갑니다.

 

그 시절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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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치 챈 사람들이 많겠지만 윤동주의 자화상에 대한 개인적 답시이다.

 광복절이 가까워지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곤 하였다. 올해도 어느때와 같이 비슷한 시간을 가지지만 그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건 어쩔 수 없다. 특히 '참회록'이 적힌 페이지를 넘어 갈 쯤이면 그 이후의 글은 잘 읽히지가 않는다. 참회록은 그의 가족들이 받는 일제탄압의 위협과 그의 일본대학 진학 수속 때문에 창씨개명을 결정하고 괴로워하다 적은 시다. 이 시에 그는 앞으로 그 어떤 즐거운 날에 자신은 새로운 참회록을 써야한다 말하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시'가 1941년 11월에 쓰였고 '참회록'이 1942년 1월에 쓰였으니 그 양심의 고통을 헤아리기 힘들다. 이 시 이후의 윤동주의 시들에 죽은 어릴적 친구들에 대한 슬픔과 부끄러움, 눈물, 숭고한 죽음에 대한 암시 등이 눈에 띄는 것이 1943년 그의 수감 및 판결내용과 관련 있을 거라는 생각은 괜히 드는 것이 아니다. 

 나의 얘기로 넘어와서 나는 윤동주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이 아님을 태생적으로 느낀다. 나는 식민으로 태어나 조선민을 탄압하고 일본군에 자원하는 사람들을 식민으로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 정당화 시키는 식민사관을 경기가 날 만큼 혐오하지만 창씨개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창씨개명을 한 것으로 스스로 욕된 인간이라 여기고 앞으로 모든 즐거운 날에 참회록을 적겠다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때로는 어떤 친구가 이런 나를 대단히 높은 사상을 품은 사람이라 생각 할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내가 살면서 행해온 비양심적 행위들을 밝힌다. 심지어 언젠가 내가 선을 넘거든 지금 내가 얘기한 것들을 그대로 기록물로 남길테니 보관하다가 나의 이미지를 몰락시켜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런 나이기에 윤동주와 같은 사람을 더욱 아끼고 지원할 수 밖에 없다. 비록 내 본성이 내 행동을 막아선다해도 내가 마음 깊이 추구하는 정신을 누군가 행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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