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_노력과 겸손

2020. 6. 5. 10:01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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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 피그말리온의 작가로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가 남긴 말이다.

 과연 그가 실제로 그랬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위대한 작품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글을 10번은 고쳐 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해당 작가가 생전에 남긴 어록들을 살펴보면 상당한 독설가였기에 이 말 또한 자신보다 노력하지 않고 자신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남겼을지도 모른다. 비록 작가가 자신의 언어에 겸손을 담는 것이 부족했을지라도 그 이전에 자신의 재능 자체에 대해서는 겸손한 자세를 가졌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한참 젊고 내 자존감이 나의 여러 재능에서 나오던 10대 중반, 주변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무엇을 잘 할 수 있냐고 묻던 시절에 알려주는 것이 싫어서, 노력할 수 있는 것 조차도 타고난 재능이니 재능이 있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아주 끔찍한 소년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 소년을 보았다면 입을 이 손으로 직접 틀어막아 줄 것이다. 대답이 귀찮았다면 아직 내가 누굴 가르쳐 줄 실력이 아니라 가르쳐 본적이 없어서 조언할게 딱히 없다며 끊었어야 했다.

 나의 삶과 태도는 이 명언과는 많이 달랐다. 웬만한 것이라면 첫 시도에 어느정도 감을 잡았고 감을 못잡는 것이라면 바로 손을 떼었다. 대신에 감을 잡을 수 있는 것들은 10번이 아니라 그 날 해가 지도록 반복해서 나에게 체득이 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테스트 하였다. 자신 있는 것만 남들이 안보는 시간에도 같은 행동을 수 없이 반복을 하니 당연히 내가 흥미가 있는 것에는 남들보다 성장속도가 빠른 편이였다. 이것만 보면 비록 방식을 다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 명언에 맞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겠다. 그런데 나의 문제는 내가 그렇게 여러번 시도해서 잘하는 것을 까먹어 버리고 남들이 못따라오는 것을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정작 나는 내가 못 따라 가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도망치던 비겁자였는데 말이다. 

 일례로 어린 시절에 배웠던 여러 가지 중에 피아노가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처음 치기 시작하였지만 난 악보를 읽는 재능도 각각의 손가락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재능도 부족하여 쉽게 늘지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부모님께 밉보이긴 싫으니 도망치지는 못하고 적당한 마음가짐으로 학원을 다녔는데 나보다 일년이나 늦게 배우기 시작한 동생이 몇달 만에 내 실력을 넘는 것을 보고 다시는 학원에 가질 않았다. 난 동생보다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 오만하고 속좁은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보니 동생은 중학생때 이후로 피아노를 더 배우지 않았음에도 누가보아도 꽤나 훌륭하게 피아노를 칠 줄 알게 되었고 나는 악보조차 읽는데 한세월이 걸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가 동생이 피아노 치는 것이 너무나 부러운 나머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동생에게 가서 피아노를 내 앞에서 쳐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였다. 악보를 읽는것도 느리고 손가락 움직임도 어색했던 나는 동생이 피아노를 치던 손가락의 움직임을 외워질때까지 보았고 직접쳐보면서 동생에게 수없이 부탁하여 다시 기억을 교정해서 내 손가락 움직임에 옮겨 담았다. 나 때문에 곡을 속도를 늦춰가며 수없이 구간 반복 연주를 해준 참으로 자애롭고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 덕에 지금도 악보는 잘 못보지만 외워서 치는 한두개의 곡은 눈감고도 웬만큼 칠 수 있게 되었고, 지금도 히사이시 조의 summer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끔씩 치고있다.

 

 나는 못치는 피아노를 수천 수만번을 치고서야 뒤늦게 내가 못하는 것을 수없이 도전해서 성공시키는 자세의 의미를 깨달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혹은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계속 도전해보는 자세를 갖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에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실패를 겪어나갈 용기의 필요성을 느꼈기에 앞으로의 나에게 겸손한 마음이 자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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